어떤 집에서 살고 있나요?

전 세계가 집인 여행작가 박민우, 집도, 삶도 비울수록 아름답다고 말하는 목공예 손한진 작가,
그들이 말하는 집과 삶에 관한 이야기
유랑자 DNA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성인이 된 이후 습득되는 것일까?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를 시작으로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니까 훈자> 등 10년간 세계 각지를 떠돌며 여행기를 쓰고 있는 박민우 작가는 현재 5년째 태국에 적을 두고 살고 있다. 초대박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이상 박봉일 수밖에 없는 여행작가의 수입으로는 턱없이 비싼 한국의 물가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콕에서 한 달 40만 원으로 버티며 근근이 살고 있지만, 그에게 일반인들이 소위 말하는 출세의 길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박민우 작가는 한때 화려한 입담으로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강사를 한 적도 있고, 잡지에서 기자로 활동한 적도 있다. 시나리오 당선으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손바닥보다 더 커진 원형탈모를 발견하고서는 즉시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회생활을 하면 당연히 받게 되는 압박(혹은 스트레스)을 견뎌내는 인자가 다른 사람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를 털어 14개월 동안 떠난 남미 여행기는 엽기적인 솔직함으로 폭넓은 팬층을 만들어냈고, 그런 인기에 힘입어 ‘세계테마기행’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생활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벽을 인정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보다 가난하더라도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커다란 가방을 메거나 끌고 좀 더 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지친 몸을 이끌고 도시 구석구석을 전전하는 여행자에게 집은 전 세계의 하늘 아래 모든 곳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뉘이는 곳이 곧 집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그저 ‘숙소’에 불과하다. 여행자에게 집이란 ‘돌아갈 곳’을 의미한다. 배낭을 풀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말이다. 현재 박민우 작가는 3개월마다 비자 연장을 위해 국경을 넘는다(방콕 내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취업 비자 등을 신청할 수가 없다). 귀찮고, 번거롭고, 힘든 일이지만, 지금 그에게 돌아가야 할 집은 방콕이기 때문에 항상 신경 써서 날짜를 챙긴다. 자칫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떠돌이 DNA가 깊숙이 새겨진 여행자라고 해서 집이라는 존재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무사히 귀가하기 위해 낯선 곳에서 몸을 사리고, 기뻐하며 짐을 꾸린다. 그는 말한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 박민우 작가는 자신과 비슷하게 고향을 떠나 중국의 리장에서 아예 뿌리를 내린 사람들을 인터뷰해 <행복한 멈춤, Stay>이라는 책을 엮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전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았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못했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났다 한 곳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스위스에서 은행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던 나딘은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리장에 머물며 호텔을 운영하고(주인은 따로 있다), 미슐랭 별 하나를 받은 프랑스 요리사는 보장된 출세를 마다하고 리장에서 개인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요리하고 싶을 때만 문을 여는 삶을 산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해 보이는 삶일 수 있지만, 이들 여행자들에게는 다르다. 어느 것이 옳은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개인의 선택일 뿐.
인간은 언제 가장 편안함을 느낄까? 많은 연구 결과로도 알 수 있지만,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때는 자연과 가까이 다가갔을 때라고 한다. 도시의 북적거림이나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조용한 자연 속에 발을 들이면 평온함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목공예가인 손한진 작가는 나무로 식탁, 소형 테이블, 다기장, 문갑 등 덩치 큰 가구와 소반이나 제기 같은 작은 소품 등을 만든다. 자연과 혼을 새겨 넣는 작품 활동이지만, 숲속에서 햇빛과 물, 바람을 품고 자라온 나무를 다루는 일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나무로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리 짧아도 3년 이상 건조시키고 다시 수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나무가 뒤틀리지 않고 오랜 시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한진 작가의 작품은 쇠붙이는 물론 못, 본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그 가치는 한 시대를 넘어 대를 잇고도 남을 지속성을 갖는다. 식당에서 주문한 메뉴가 10분만 늦게 나와도, 택배가 예상보다 하루만 늦어도 짜증을 내는 현대에서 목공예란 오랜 시간의 정성과 인내가 필요한, 지난한 작업인 것이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에서 목공예란 일반인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인의 영역이지만,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에게 팔려나가집안을 장식하고, 실제 생활에 사용되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자연의 결을 살린 손한진 작가의 작품에 매료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도 그가 만든 장을 구매했다). 30년이 넘도록 목공예에 매진한 손한진 작가는 2년여 전 부산 기장군 장안사 들목에 ‘손한진 갤러리 카페’를 냈다. 손한진 작가의 아내가 운영을 한다. 손한진 작가의 작품이 진열돼 있는 이 공간은 다른 카페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고풍스럽고 단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의 감성을 닮은 공간의 편안함 때문인지 이 갤러리 카페는 오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원목을 그대로 잘라 오랜 시간 건조시켜 만든 넓은 테이블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맷돌에 갈아 내린 커피를 마시며 독서 모임을 가지고, 테이블 매트에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들꽃을 수놓는다. 북적거리는 카페라기보다 온전한 휴식을 위한 힐링 공간과 같다. 이들 부부는 말한다. 공간이든 삶이든 비워야 아름답다고 말이다. 더 많이 보여주고픈 마음 때문에 공간을 자꾸 채우고자 하지만, 이런 욕심을 억누르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도, 느끼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채우려고만 들면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이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공간이든 빈틈없이 꽉 채워서는 비집고 들어설 여유가 없다. 내려놓고 비워야만 그 빈자리에 행복이 찾아든다. 가진 재산까지 팔아 나무를 사모으며 작업에 열중하는 남편의 외길 인생에 아내의 불평이 이어질 수도 있을 듯하지만, 예술가의 아내는 묵묵히 남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이들 두 부부의 삶은 자연을 닮아 있다.